0.
나도 알듯말듯한 말들 몇 자 씨부리고 조낸 신비하고 뭔가 있는 척 하는 글을 써봐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이건 뭐 유행도 아니고......
평소와 좀 다르더라도 이해해주시길. 계속 이럴 건 아니니까요. 응? 토닥토닥.
1. 종종 개념으로 사태를 포착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개념이 사태를 무한정 만들어내지 못한다. 현란한 수사가 인식을 (또는 현실을) 압도할 때, 가장 좋은 대응책은 "그런 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해주는 것이다.
2.
그 개념에 대응하는 사태가 존재하더라도 우리는 비중의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찻잔 (혹은 두개골) 속의 폭풍"이란 멋진 표현을 이럴 때 쓰자. 거대한 시간의 스케일, 지역적, 계층적 조건과 제약들을 쉽게 무시하고 보편으로 도약하는 철학적 정신은 공허하다.
3.
"Give me the numbers." 왜 인문학이 숫자를 멀리 해야 하는가. 주관적인 편견을 일반화시키는 고질적인 질병에 대한 유일한 치유책.
4.
인문학의 실험 : 고유명사를 사용하지 않고 글을 쓰기. 고유명사는 긴 설명을 간단하게 줄여주거나 너무나 많은 뜻을 갖게 된 일반적인 개념의 의미를 한정하는 역할을 하지만, 때로는 지성의 빈곤함을 감추는 도구로 쓰인다.
5.
제3세계의 문화적 식민지라는 현실로부터 출발하지 않는 인문학이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 물론 극복을 논하기 전에 철저히 배워야 한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정말 그런 생각이었으면 고전 번역을 그따위로 놔두진 않았겠지. 극복은 다음 세대로 넘기고 그냥 토양이라도 제대로 되든가. 고전의 철저한 학습을 강조하랴, 유행 따라가랴, 그러면서 현실과 맞닿는 창조적인 철학 모두 하려니까 힘들지? 이도저도 못하고 어설프게 유행 따라가며 베끼고 요약해서 팔아먹는 게 공부냐?
6.
"Don't study Foucault. Do Foucault!" 라깡과 노닥거리고 들뢰즈랑 친구하고 데리다를 논한다고 해킹을 우습게 보지 마라. 해킹만한 학자, 한국에 나올려면 멀었으니까. 마이클 프리드만, 프레드릭 바이저 같은 사람도 마찬가지. 논의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명료하게 쓴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야. 세상을 뒤집지 못하면 이해한 것이라도 명쾌하게라도 쓰라고.
7.
소망 사고라는 유아 상태를 벗어날 필요성. 그렇게 보고 싶다고 세상이 그렇게 돌아가는 게 아니잖아? 욕망이 생산이면 좋겠어, 결핍이면 시러. 생산적이고 창조적인, 소통하는 다중이 있었으면 좋겠어, 규정되지 않는 차이의 놀이가 조아......
닥치고 나가서 삽질부터 막아라.
8.
의도와 결과의 혼동. 도대체 언제까지 의도에 공감하는 것과 성과를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것의 차이를 명확히 할 것인가. 철학을 하자는 거야, 아니면 선전을 하자는 거야? 니네 말대로 그런 사상사적 혁명이 일어난 거라면 벌써 세상이 열 번은 더 뒤집어졌어야 하는 거 아닐까? 도대체 사상사에서 그런 혁명을 꿈꾸지 않은 세대가 있었을까? (물론 찌꺼기들인 너네 빼고)
9.
...... 난 하이데거가 싫어. 걔가 세상에 대해 뭘 알았겠어? 응?
------------
쓸데없는 이야기는 집어치우고 오늘의 되새김 지식. 트위터에서 @pythagoras0 님이 날린 트윗에서 확장된 이야기.
말로 설명하는 것이 엄청나게 어려운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삼각함수가 뭐냐? 말로 설명해 봐."라고 요구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뇌가 마비되기 마련. 하지만 그림이나 도표를 그려도 좋다고 하면 비교적 많은 사람들이 그럭저럭 설명해낼 수 있다. 하지만 기하학적인 이해와 공리적인 이해, 그리고 그것을 말로 풀어내는 개념적 이해가 통합되는 게 바람직하다는 건 명확한 사실.
"직각 삼각형에서 직각이 아닌 꼭지점의 내각과 삼각형의 세 변 사이의 관계를 삼각함수라고 한다"고 이해하면 아직 중등 수학의 단계.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서 "반지름이 1인 단위원 위의 한 점 X(x,y)가 있다고 할 때 원의 정의에 의해서 x^2 + y^2 = 1의 관계가 성립한다. 이때 원점 O와 점 X를 잇는 선분 OX가 X축과 이루는 각도 θ(라디안)와 x, y 사이에서 다음과 같은 함수를 정의할 수 있다. sinθ = y, cosθ = x, tanθ = y/x." 뭐 이런 식으로 이해하면 이제 고등학교 수학 수준인 거다.
물론 이런 설명을 들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머릿속에서 원을 그리고 도형을 그리면서 이해할 것이다. 이런 명쾌한(응?) 설명에 대해 치를 떠는 사람들 상당수는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이 아닐까 싶고. 이렇게 초보적인 기하학적 직관으로부터 출발해 좀 더 추상적인 개념(과 그 기호)이 정의를 통해 도입되고 새로운 정리가 도출되고, 그러면서 수학의 내용이 풍부해지는 것이겠지. 중간에서 잠깐 정신을 잃었다간 전체적인 조망(개념과 개념 사이의 관계, 정리와 정리 사이의 관계 등)을 하지 못하게 된다는 건 당연한 사실.
철학이라는 게 역사적인 구체적인 경험으로부터 추상된 개념들을 다룬다고 한다면, 최초의 출발점은 역시 구체적인 (사태와 대상의) 이미지들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자꾸 관념의 고공비행 그 자체의 현기증나는 스릴에 빠져 지상의 이미지들을 잊어버리는 사람들을 볼 때면, Seyn을 이해하려고 노력할 시간을 좀 아껴서 sine을 공부하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후다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