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게을러서 모든 인용의 링크는 생략합니다. 여기서 거론되는 "노정태", "소네트", "날라리 무도인" "키시야스" 님들은 저같은 듣보잡 블로거와는 비교도 안되는 분들이니 다들 아실 거라고 생각하고, 혹 모르신다면 검색해서 읽어보시기를 강권합니다.

 

1.

"마돈나-창녀" 컴플렉스라는 게 있다. 마초 사회에서 사춘기 소년 중 상당수가 걸리는 병인데, 순결한 음란녀라는, 불가능한 모순을 바라는 마음 상태다. 밤에는 M녀 암퇘지건 S 여왕이건 욕망을 주체 못하는 애액 덩어리로 변신하면서 평소에는 부끄러움을 이기지 못하는 요조 숙녀의 모습을 기대하는 것.

 

뭐 그게 불가능한 것은 아닌지도 모르겠다. 평소의 억압과 가면을 벗은 일탈이라는 삶의 패턴이 조금 극단적인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 그리 보기 힘든 모습은 아니지 않는가. 문제는 그런 여성이 "실제로 존재하는가"의 여부가 아니라 그런 여성을 바라는 남성의 판타지다.

 

약간은 비약이겠지만 나는 인민, 대중, 시민 뭐라고 부르건 사회의 대부분을 구성하고 있는 집단에 대해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정치 엘리트가 갖고 있는 환상도 이와 다르지 않은 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현실적인 추악함에 대한) 경멸과 (이상적인 도덕성에 대한) 동경이 불가능한 모순을 이루고 있는 상태, 뭐 그런 점에서.

 

2.

레오 스트라우스의 제자인 앨런 블룸같은 사람의 글(미국 정신의 종말이나 셰익스피어의 정치학같은 에세이류)을 보면 이 사람, 교양의 가치를 아는 엘리트주의자라는 걸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네오콘 네오콘 하지만, 아들 부시나 딕 체니처럼 왠지 무식해보이는 텍사스 석유 재벌같은 느낌이 아니라, 부르주아의 오랜 문화 유산을 장시간에 걸쳐 체득해 일체화된 가치관같은 걸 갖고 있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실물은 안 만나봐서 사생활도 그런지는 모르겠다). 그런 걸 보고 동경한 얼치기 우파가 정신적 귀족 운운하며 코메디를 만들긴 하지만, 적어도 우파는 이런 정치적 문화적 엘리티시즘을 전면에 내세우면서도 당당할 수가 있다. 레오 스트라우스가 플라톤을 과격하게 읽고 "비의적인 해석"이 가능하다고 했던 것도, 민주주의의 환상을 깨려는 우파 엘리티시즘의 사상적 기반을 마련하려는 정치적 해석 작업으로 볼 수 있으니까.

 

3.

그런데 좌파는 이런 길을 갈 수가 없다. 레닌의 노선을 따라 대중보다 딱 한 걸음이나 반 걸음만앞선 지도부가 필요하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적어도 급진적 민주주의의 신념은 현실을 지배하고 있는 소수가 아닌, 다수의 의지가 더 선하고 올바르다는 희망과 결별할 수는 없다. 기껏해봤자 내세울 수 있는 게, 대중들이 "지금은" 오해하고 있는 것일 수 있으니 그들에게 진실을 보여주면 된다는 것이다. 만일 헤게모니의 투쟁이라는 게 마키아벨리즘처럼 "우파가 대중을 기만하듯 좌파 식으로 기만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면 좌파의 도덕적 기반은 붕괴될 테니까 말이다. 좌파의 헤게모니 전략은 어떻게든 대중을 설득해서 데려온다는 마키아벨리적 전략이 아니라 대중들에게 진실을 보여줌으로써 소수가 감추고 있는 진정한 이해관계를 그들에게 알리는 계몽의 기획일 수밖에 없다.

 

4.

들뢰즈와 네그리의 노선은, 난 잘 모르지만, 대중들에게 자신의 진정한 욕망을 일깨워줄 수 있고 (혹은 그들이 이미 그것을 알고 있고) 그 앎/깨달음의 힘이 급진적 민주주의의 진정한 원동력이라고 믿고 있는 듯하다. 이런 입장에서 대중(혹은 "다중")들에게 필요한 것은 마치 68년의 구호처럼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라"라는 욕망의 긍정이 될 거다. 이미 그들은 현명한 존재니까. 그들의 잠재력을 믿는다면 중요한 것은 자각일 뿐이다. 그러니 "좌파(왼쪽)는 거들 뿐." 우파처럼 그들을 "이끌고" 가야 한다든가 어차피 대중들은 가르쳐줘도 모르니 그냥 "제대로 끌고가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건, "결과적으로 다 너네 좋으라고 하는 거야"라는 식의 이야기가 될 뿐, 민주주의의 이상과는 거리가 멀어질 뿐이니까.

 

그래서 궁금해지는 게, 왜 진보 좌파의 엘리티시즘에 대해서 그들은 충분히 경계하지 않는 듯 보일까 라는 거다. 왜 위험한 독소를, 그대로 갖고 있는 것일까?

 

5.

물론 마르크스가 비밀 집회에서 책상을 내려치며 "무식은 인류의 진보에 도움이 된 적이 없다!"고 소심하고 선량한 (하지만 소영웅주의에 사로잡혀 있던) 한 가련한 남자를 겁먹인 적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건 지도적 그룹 내부에서의 문제고 (게다가 무식한 영도자의 어설픈 나대기는 무책임한 것이라는 일갈이기도 했고), 그가 <자본> 불어판을 분책으로 내면서 노동자들이 직접 읽기를 바란 건 결국 그들 스스로가 자신의 문제를 알아야 한다는 신념 때문이었을 것이다. 우파건 좌파건 남들을 이끌기 위해서는 사태를 제대로 알고 분석할 수 있는 지식과 통찰이 필요하지만, 대중들이 그런 것을 갖고 있지 못하다고 비웃거나 배제할 수는 없다는 이야기다. 대중들이 무지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그들을 조롱하고 비웃는 건 전혀 좌파적이지 않은 일이다.

 

나는 노정태님이 블로그에 글을 쓸 때, "인터넷에서 글 읽을 수 있는 인간들"이라면 다 리더 그룹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니들은 무식해! 그런 건 진보에 도움이 안돼!"라든가 "니들은 머저리. 골룸. 병신들. 세상을 제대로 볼 줄 아는 거야?" 그래서 그는 어쩌면 노빠라고 나서는 인간들은 이미 "순진한 대중"에 속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은 아닐까. "그 정도로 알면 니들은 이미 순진하지 않아! 니들은 대중이 아냐, 그러니 까면 그만일 뿐!" 만일 그가 좌파 정치를 하려고 한다면 대중들을 그런 식으로 대할 이유가 없으니 분명 블로그에서 까고 있는 대상들은 대중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일 거다.

 

나는 종종 그가 보여주는 분석의 날카로움과 흥미로움은 차치하고 (모든 부정은 규정적인 부정이므로) 그의 윤리적 스탠스는 (도덕적인 올바름과 분노라는 명분을 갖고?) 자기 모순적이라는 느낌이 때가 있다. 그는 블로그에서 독자들과 대화하지 않고 그들을 깨우치고 가르치려고 든다. 하지만 그 가르침과 깨우침은 독자들의 허위의식을 까발리고 조롱하는 것으로 변질된다. 그렇다면 그의 독자들은 도대체 누구란 말일까. 그의 글을 보면서 신나하는 동지들? 혹은 그의 글에 불쾌감을 느끼고 덤벼들다가 다시 노정태님의 칼을 맞고 나가떨어지는 찌질이들? 설마 고개를 끄덕이며 "전향"할 사람이 몇이나 된다고 그렇게 말의 칼을 휘두르시는 걸까. 그거 그냥 분노일 뿐인가.

 

6.

사실 이 문제는 아주 어렵고 심오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날라리 무도인"님이나 "키시아스님" 같은 분들이 보여주는 스탠스는, 진보좌파의 것과는 거리가 멀지만 그분들이 우파라고 단언내리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그분들은 (노무현의 노선처럼) 민주주의라는 (어쩌면 추상적이고 공허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기본적인 대의에 입각해서 시민들의 상식에 기대어 글을 쓰고 호소한다. 그들이 생각하는 "시민적 민주주의'란 환상이며 공허하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우파가 그렇게 말하는 것과 좌파가 그렇게 말하는 건 전혀 다르다는 게 내 생각이다.

 

예를 들어 소네트님과 같은 우파의 입장에서라면 "현실적이 되어야 한다"는 한 마디 만으로 그 모든 부담을 덜 수 있다 (소네트님이 그렇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우파는 존재하지도 않는 "다중"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좌파는, 우파가 지적하는 그런 "현실"의 굴곡 속에서 어떻게 대중의 힘을 믿고 그것을 이끌어낼 수 있는가를 고민해야 할 천형에 처해 있다.

 

만일 노무현이 우파들로부터 "좌파"라는 딱지를 받는다면, 그것은 그가 계급적인 문제를 고민해서가 아니라 "국민"이라는 이름의 다수의 의지가 항상 (장기적으로 보면) 올바른 방향으로 나갈 거라는 믿음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그가 좌파로부터 비난을 받는다면, 그것은 그가 "국민"을 이야기할 때 실은 노동자 농민 등 다수의 기층 민중들을 은근슬쩍 지워버리고 중산층 이상의 시민들만을 머리 속에 둔 것이 아니었겠느냐는 비판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고. 그래서 노빠들은 역시 그런 점에서 기층 민중들의 이해관계와는 거리가 먼, 중간계층의 자기 환상에 사로잡힌 인간들이 되어버릴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노빠들이 민주주의의 기반이어야 할 "대중"이나 "시민"에 속하지 않는 건 아닐 거다. 어떻게 이들로 하여금 좀 더 근본적인 민주주의의 문제, 계급적 갈등과 소외의 문제, 기만적인 의제 설정으로 인해 시야에서 사라진 노동과 자본 사이의 갈등이라는 근본적인 사회 경제적 문제들을 직시하고 그것들이 "자신들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걸 깨닫게 해서 동지를 만들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는 게 진짜 좌파들이 고민해야 할 문제가 아닐까? 아닌가? 아니었나?

 

7.

싸가지니 인간에 대한 예의니, 국민에 대한 믿음이니,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이 실은 부르주아들의 허위 의식이라거나 자기 기만일 수도 있겠다. 그렇다고 조롱은 그것을 깨고 더 근본적이고 급진적인 민주주의의 실현을 위해 도움이 되는 방법은 아니다. 아닌 것 같다.

 

8.

적어도 지금은, 공화주의와 대중 민주주의라는 '환상'이 "머저리" 노빠들에 대한 공격보다는 훨씬 건강하고 긍정적인 신념인 것 같다.

 

그래서 내게는 이른바 노빠들이 타겟을 잘못 잡고 "한나라당 반대"라든가 "이명박 반대"라는 구호에 머문다거나 그저 FTA에 찬성한 유시민이나 다시 불러들이려는 헛된 짓을 하고 있는 것조차도, 사회의 계급적 모순은 보지 못하고 "지역감정 타파"라는 낡은 구호에 매달리는 것조차도 원내 교섭 단체조차 만들지 못하는 소수 정당들의 입지를 위해 그런 감수성을 비웃는 것보다는 더 건강해 보인다.

 

자, 대중들은 딱 그 수준이다. 어떻게 해야하는가. 노정태님보다 한윤형님이 조금 더 건강한 고민을 하고 있다고 생각이 드는 건 그 때문이다. 정치적인 지향과는 상관없이, 그는 대화가 가능한 사람이다. 대화할 생각이 없으면, 정치 운동을 하면 안된다.

 

P.S.

'미저리 노빠'들은 도리어 진정한 정당정치를 실현하는 과정에 방해만 될 뿐이다. 자신들의 팬클럽, 음모와 협잡이 난무하던 그 팬클럽의 운영이야말로 '민주주의'였다고 그들은 굳게 믿는다. 그런 자들에게 민주주의를 다시 가르치는 일에 귀중한 시간과 체력을 낭비하지 말자.

 

나는 효율적인 게 뭔지 잘 모르겠다. 역사에서 난다긴다 하는 위대한 인물들이 얼마나 "효율적'으로 정치 개혁을 성공했는지 돌이켜 보면 대부분 전력 질주 해서 "다음 세대를 위한 준비" 정도에 성공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라고 생각해서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미저리 노빠"들이 독재에 대한 향수에 사로잡힌 영남 수구 세력보다 더 한심한 존재일까?

 

나는 이 영남 수구 세력 중에서도 대화가 가능한 사람들을 구별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민주주의의 가치를 진실로 부정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그들과 자꾸 대화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만일 노정태님의 말대로라면 영남 수구 세력, 독재 세력 잔존파, 그리고 그들과 (일시적으로라도) 결합해 자신들의 이익을 굳건히 지키려는 서울 강남 등 부유층 등에다가 노빠들과 노빠에 휘둘리는 중간 계층들조차도 "진정한 정당 정치로서의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데 도움이 안되고 방해가 되는 세력이 될 거다.

 

하지만 분명히 노정태님 정도의 식견을 가진 분이라면 아실 텐데, 하층민 중에서 이들의 이익이 "국가의 이익"이라고 생각하고 부화뇌동하는 사람들이 아마 상당수일 거다. 사회적 교육이 부족한 계층에서 나타나는 전형적인 현상이고 이들은 자신들의 진정한 이해관계를 알지 못한다. 아마 서울대 교수 시국 선언 발표회장에 나타난 "대한민국 어버이회" 회원분들이나 서울 광장에서 혀를 쯧쯧 차며 뒤에서 궁시렁댄 노인네들 중에서 사는 분들은 그리 많지 않을 거다. 하다못해 택시를 타거나 건축 현장에서 노가다를 뛰어도 진보 정당 지지세력은 정말 보기 힘들다. 대부분 "권력 가진 놈들"에 대해서는 분노를 터뜨리지만 동시에 "나라 어지럽게 하는 좌파들"에 대해 욕설을 퍼붓거나 조금 더 진보적인 듯 보여봤자 "노무현이 아까운 사람" 정도에 머무른다.

 

자, 그럼 이 사람들도 나라 민주주의의 적이다.

 

대충 생각해 보시면 알겠지만 진정한 정당 정치를 통해 구현될 "민주주의"를 같이 할 동지들이 얼마 안된다는 걸 알 것이다. 하지만, 앞에서 말한 (수 백만을 넘어서 유권자의 3/4을 넘을) 시민들을 배제하고 남는 사람들의 표를 받아 정당 정치를 한다는 게 도대체 얼마나 성공적이겠는가? 국회 원내 교섭 단체를 만들지 못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거기에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