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회사 일도 바쁘고, 개인적으로 번역 일도 많이 밀려 있는 상황이다. 게다가 칸트랑 프로이트에 대해서 읽을 건 왜 이리 많은지. 제대로 읽고 착실하게 정리하는 일 따위를 하지 않은 지 너무 오래되었기 때문이긴 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땜질용 포스팅이라도 차곡 차곡 쌓아 두면 재산이 될까 싶어서 아이스크림 한 통 먹은 후유증으로 배 아프고 머리 아픈 새벽에 몇 자 적어 본다. 어차피 오타쿠는 "개똥 철학"을 해야 하니까, 책임감 없이 마구 써도 되지 않을까 싶다. 한국의 학계를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는 건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1.
─ Robert Nozick, The Nature of Rationality, xii
* 개발 번역이므로 인용하지 말아 주세요. 강조는 제가 한 것.
─ Robert Nozick, The Nature of Rationality, xvi
* 역시 개발 번역.
위키피디아에 한 페이지가 마련되어 있는 노직의 이 책은 1993년 출간되었다. 벌써 15년 이상 지난 낡은 책인 셈이다. 서문에서 뽑아낸 이 두 단락에 대해 뭔가 설명을 붙여 보려고 했지만, 길게 쓰다가 그냥 지우고 간단하게 한 단락만 남긴다.
2.
길버트 하만과 함께 노직은 실질적 합리성(practical rationality) 개념에 관한 중요한 이론가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전통적인 철학적 문제의식은 (암묵적으로) 신적인, 완전한 합리성이라는 불가능한 가정 위에 세워져 있는데, 프래그머틱한 관점에서 볼 때 그 문제는 지나치거나 과도한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는 논리적으로는 귀납을 정당화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간은 귀납적 사고, 특히 성급한 일반화를 하지 않고서는 살 수 없다. 몇 번 겪고 나면 나무 뒤에서 움직이는 노란 건 사자라고 생각하고 조낸 뛰어 달아나는 게 생존에 훨씬 유익하다. 모든 자료들을 다 종합하고 분석해 "확실한 추론"이 이루어질 때까지 앉아 있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철학자가 왜 진화적으로 생존하기 어려운지는 아주 명백하다. (응?)
그러므로 귀납을 정당화하는 것, 다시 말해 "단칭 진술로부터 보편 진술로 나아가는 것"이 철학의 가장 중요한 주제라고 말했던 카르납으로부터조차도 우리는 멀리 와 있다. 우리는 보다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귀납적 추론에서의 문제들에 대해서 더 많은 연구를 한다. 베이지언 추론과 결단 논리, 통계적 추측 등이 바로 그러한 분야다. 노직의 암시처럼 오늘날에는 흄으로부터 카르납에 이르는 전통적인 '귀납의 문제'를 가지고 고민하지 않는 게 더 현명한 일일 것이다.
3. (추가 및 수정)
이런 글을 올린 건 내가 두 번째 글에서 굵은 글씨로 표시된 분야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고 계속 (공부라고 하기엔 모자른) 독서를 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고전적인 철학적 문제들이 전문적인 지식의 발달로 인해 중대한 변화를 겪었다는게 두 번째 인용문의 요지인데, 철학사에 대한 공부만으로 이런 문제들에 대해 실질적인 통찰을 얻는 건 불가능하다. 노직이 말한 대로 '전문 분야'들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다. 이게 워낙 어렵고 힘든 일이다보니 차라리 철학사의 고전 속으로 들어가 문헌학적 작업이나 하고 있는 게 속편한 일이겠지만 말이다.
물론 그 작업이 무의미하다는 건 아니지만, 갈 길이 참 멀다는 뜻이다. 철학도 제도적 학문이라 일종의 '분업과 협업'이라고 한다면, 이 어려운 작업에 뛰어드는 철학자들이 좀 더 많았으면 좋겠다는 뜻이기도 하고 말이다.


